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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시작하기 전에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시간과 정열을 기울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이 취미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리라 생각된다.

본인이 인턴시절인 1979년 지금의 처가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 이때 지금은 작고하신 선친께서 너가 장가가는 것이니 정작 필요한 서간은 직접 만들도록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요즘이야 혼사때 흔히 사주정도를 붓글씨로 써거나 아니면 인쇄물이라도 이용하여 전달하고 그외 예단등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혼서예장(婚書禮掌)이 전달 된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혼서예장은 남자가 장성하여 혼인할 때가 되었으니 혼기가 된 처녀집에 혼사를 요청하는 혼인요청서이며 이때 남자로써 여인을 평생 반려자로 삼겠다는 등의 약조를 적게 된다. 요즘 생각으로야 무슨 필요가 있나 생각하겠지만 조선시대 당시의 시대상황으로는 호적제도가 있었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고 또 남자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법적보장제도도 마땅하지 않은 시절에 사건이 생기거나 송사가 생기면 여자로써 제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약정서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평소에는 장롱 가장 깊은 밑 바닥에 숨겨두었다가 여자가 운명하여 장례할 때 가슴에 꼭 간직하고 하관을 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서간이니 당사자가 직접 적어보라는 말씀에 전에 붓글씨도 해본적이 있고 또 혼사에 의미도 있어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바쁜 인턴시절에 6개월 걸려서 만들게 되었다. 이때 우리의 전통 편지봉투 제작을 직접하여야 하였고 또 서간작성법을 터득하여야 하여 점차 우리의 전통서간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인턴시절 결혼하기 전에 만들었던 혼서예장(婚書禮掌)이다. 전통 서간은 반드시 봉투가 같이 보관되어야 하며 양면의 접는 면이 중간에서 만나도록 하였으며 세로축은 한지에 있는 밑바탕 무늬와 같은 방향이 되로록 하였다. 봉투에는 수신인측 본관, 성을 적고 밑에 집사(執事)를 수신자로 기재한다. 요즘이나 당시나 집사는 가신에 해당되는 집마름에 해당하겠지만 실제로 집사가 있는 집안이야 거의 없는데도 굳이 적곤하였다. 옛이야기에 주인만 있는 집안에 손님이 온 경우 꼭 집안에 하인이 있는양 “여봐라 누구가 왔다고 아뢰라”하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되겠다. 즉 가공의 제삼자를 등장시켜서 외면적으로는 서로 최선의 예우를 지키는 것이 되며 사태의 악화가 있을 때도 마치 제삼자의 역할이 잘못된 듯이 하여 당사자의 직접적인 충돌을 회피하는 선조들의 지혜이겠다. 만약 집사(執事)를 수신자로 적기가 곤란한 경우나 약식인 경우는 댁입납(宅入納)이라고 적곤 하였다. 이 서식은 혼서예장(婚書禮掌)으로서 일종의 혼인 요청서가 되겠다. 선친의 권유로 비록 좋은 필치는 아니나 성의껏 직접 붓글씨로 적고 봉투도 만들고 하여 우리의 전통 서간의 멋을 이해하게 되며 취미생활을 하게 되었다.


요즘 편지는 거의 대부분 버려지며 보관한다고 해도 봉투는 버린 채 편지지만 모으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는 표구를 하듯이 바닥 한지에 편지지와 봉투를 같이 잘 붙인 후 철하여 보관하였다. 이때 총 편지 매수와 목차를 같이 표기하여 내용 파악을 쉽게 하였다.
옛날 편지가 대부분 가구나 집안 도배때 바닥재료로 많이 소진되어 잘 정리된 옛날편지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아쉬움이 더한다.



철종때 이인량참판의 편지로 봉투와 함께 잘 보관된 상태이다. 단아한 글씨에 잘 정서된 필치는 흔히 인품을 표현하였다. 편지지에는 수결을 넣어 요즘의 사인(signature)과 같은 목적으로 이용하곤 하였다. 이때 흔히 일심(一心)이라는 수결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요즘에는 왜곡되어 폭력조직등에서 잘 사용하는 용어처럼 되어 버렸다. 편지봉투에는 직접 수결을 중간접합부에 적어 다른 사람이 뜯어보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으며 또는 도장을 찍는 납관을 하기도 하였다.


편지 내용의 초두에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혈연관계등을 소상히 적어 누구의 몇대손 누구는 모모의 몇대손 모모에게 어떤 연유로 편지를 보내고 서로의 집안의 자랑스러움을 먼저 열거하여 상대편에 대한 존경과 지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일종의 상대방에 대한 최선의 예의를 표현함은 물론이고 은연중에 학식으로 상대방에 우위를 갖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본 편지는 임진난 공신 문부선생의 8대손인 정광일이라는 분에게 의성군의 집안에서 보낸다고 편지 초두의 내용이 보인다.



철종의 장인 부원군 김문근(1801-1863)의 편지이다. 김문근은 철종장인으로써 세력을 행사했지만 몸집이 비대해서 포물부원군(包物府院君)이라고 빗대곤 했다. 이런 몸집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필(細筆)에 능하다고 장안에서 뒤로 소문이 나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