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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께 배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정신

지금은 작고하신 선친께서 26개의 박사학위의 자격이 있었던 어느 훌륭한 분의 소개문이라며 어릴 때 흔히 재미삼아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 오는 것 같다. “이분은 의사, 해부학자, 전쟁과학자, 지리학자, 건축가, 도시설계자, 음악가, 화가, 철학자, 기계공학자, 수학자, 요리사, 무대디자이너, 재담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란다.” 하며 오래된 그림책을 펴 놓고 이야기 해주시곤 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어린 마음에 황당하기도 했지만 보는 내용마다 새로워서 이야기에 푹 빠지곤 했다. 나도 언젠가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소개를 받을 수 있으면 하는 꿈을 어릴 때부터 갖고 자라게 되었다. 이제는 의과대학교수, 방송인, 작가등 다양한 역할과 20여종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중년인이 되어가고 있다.
어느덧 55세가 되어 옛적 아버님의 나이가 되니 어린이들에게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가며 들려주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아하! 아버님께서 이렇게 나를 키웠구나’하고 다시 살펴보니 요즘 하고 있는 일들이 어려서 손 쉽게 보아온 다빈치의 창의력 교육법이었다. 항상 새로운 일을 즐거워하며 남들이 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여 새로움을 더하는 태도 자체가 창의력교육이었다. 바로 교육이란 이론 이전에 자신의 스스로 행하여 배움을 얻는데 있다는 말씀의 진리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깨닫는 것 같다.

국민학교 6학년(1966)때 지방에서 서울으로 이사온 뒤 사투리를 쓴다고 같이 과외공부도 못하고 혼자 외토리로 지내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해볼 기회를 전화위복으로 가지게 되었다. 서울중학교에 진학하고 어린 마음에 신기한 물건이 많은 청계천과 세운상가를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옛날화폐, 고서간집등 고물수집을 하게 되고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천체망원경 라디오 전축등을 만들어 아르바이트를 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와 접촉하게 되며 아버님께는 ‘우리의 옛것을 깨달아’라는 뜻으로 붓글씨 한학과 족보학등을 집에서 교육을 받으니 어릴 때는 잘 몰랐으나 점차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융화할수 있었다. 대학교 진학을 공대쪽으로 원했으나 집안에 의사가 없으니 의대가라는 말씀에 연세의대(1973)에 입학하여 참으로 재미없는 의과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입학하자말자 의대생중 전기기술자로 지목이 되어 의과대학 연극조명만 6년을 하였으며 기계수리 잘한다고 무의촌진료때마다 발전기 및 가전제품수리 담당을 하였다. 그러다 임상실습때 영상의학과(구 방사선과)에 가 보니 기계가 많아 진로로 선택하여 자리를 잡아 나갔다. 유별난 행동으로 괴짜 짓을 도맡아 하다가 진로를 정하니 안정되게 의학공부를 하여 연세의대교수로 남게 된다. 그래도 괴짜는 변치 않는지 군대생활 3년을 무의촌에 공중보건의로 배정받았는데 그 당시 동아백과대사전이 출간되어 초간을 구입하여 3년간 매년 1회씩 전질을 3번 통독을 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 산발적으로 산재하던 지식이 점차 자리를 잡고 서로 연결되며 지식의 조화와 창의성의 향상을 이루게 되었다.

의과대학교수로 연구와 진료에 매달려 지내다 나이가 50이 넘고 보니 어릴 때 생각이 들곤 하여 더 이상 스스로 매진할 수 없어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에 노력하게 되었다. 강남의 요충지인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어린이를 위한 별보기 행사를 11년째 하며, 전국 오지에 과학책보내기 운동도 하였다. 그러던 중 MBC TV에서 2004.5-2006.7까지 2년 2개월간 어린이과학방송 ‘아하! 그렇구나’의 MC도 맡아 어린이과학교육에 참여하게 되며 어린이 과학책 ‘아하박사 과학하고 놀기’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평소 취미인 과학자 얼굴나오는 외국화폐수집을 기반으로 ‘우리나라 새지폐에 과학자얼굴올리기 운동’을 직접 추진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전문직종인 방사선학을 이용한 방사선 영상 예술을 선보여서 과학, 의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에 힘쓰고 있다. 또 우리 선조의 훌륭한 업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상무이사로 업무를 같이하며 노력중이다.
어느덧 검은머리에 흰머리가 어울리는 중년이 되어 어려서부터 선친께 받은 교육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자연히 의학, 과학과 예술 및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 아무 것도 모르고 선친께 배웠던 교육을 다시 되새겨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다빈치식 창의력교육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1.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이전부터 많은 것을 보여주고 호기심이 생기게 해서 스스로 하게 유도해라.
2. 불확실성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끈질기게 하는 법을 가르쳐라.
3. 두뇌의 능력을 향상시켜 동시에 다양한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가르쳐라.
4. 과학과 예술을 동시에 가르치고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가르쳐라.
5. 기록을 항상 남기고 정리하여 다음에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라.
6. 동서고금의 역사와 백과사전등을 포함한 폭넓은 공부를 하여 종합하라
7. 스스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수련하여 자신의 인품이 돋보이도록 하라.

요즘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방과후 여유없이 학원교육에 매달려 꿈이 흐려지며 다양한 체험을 못하게 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다양한 시도와 미래를 위해서 실패도 중요한 다양성의 창의력 교육의 하나인데 성공만을 위한 한가지에 집요한 맞춤형 교육에 시들어가는 청소년들이 못내 안스럽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이와 자녀의 부모들도 청소년기때 시작하는 다양한 창의력 교육이 어른이 되어서 활짝 피어 날 수 있는 다빈치식 창의력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